[파산일지 3화] 파산에서 기초수급자로..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자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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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2025년 가을,
파산 선고를 마치고 기초생활수급자 증명서를
손에 쥐었던 그 시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숨이 막히던 나날이었습니다.

당장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기에, 하루 10시간씩 내일배움카드로 학원 교육을 받으며
정신없이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제 처참한 현실을 고백했던 글에
수많은 동료 자영업자분들이 피눈물 나는 댓글과
질문들을 남겨주셨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법무사 사무실은 어디냐”,
“개인회생은 왜 안 했냐” 등등…

오늘 3화에서는
그 시절 제가 회생과 파산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차가운 현실 벽에 부딪혔었는지
그 못다 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회생이냐 파산이냐,
그리고 선배의 조언

처음 빚 독촉이 몰아칠 때,
저 역시 회생과 파산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습니다.
서초동 일대의 법무사 사무실 서너 군데를 돌며
전화와 방문 상담을 받았었죠.

하지만 돌아오는 질문은 늘 똑같았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건가요?
당장 소득이 없으면 회생 신청 자체가 안 됩니다.
회생했다가 결국 터져서 파산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많으니 잘 선택하셔야 합니다.”

그 질문에 저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70억 매출을 찍으며 20년 동안
의류 공장을 운영하고 화려한 디자인만 해왔던
내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대체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지
제 자신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신용불량자로 5~10년은
숨 죽이며 살아야 하는데,
과연 재기라는 걸 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때 동종업계 선배 한 분이 제게
아주 독한 조언을 건넸습니다.

“파산하면 처음에 정말 많이 힘들어.
한강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고
물만 보면 뛰어내리고 싶을 거야.
그런데 막상 겪어보면 또 해볼 만해.
한번 파산해 보면 너무 아파서,
그 뒤론 다신 그렇게 안 살려고 스스로를
철저하게 옭아매거든.
너 아직 40대 초반이잖아?
내 기준에 파산은,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한
결정적인 계기였어.”

그 말을 듣는데 화도 나고 겁도 났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에 순간 진짜 한강으로 가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한강이 아닌
컴퓨터 앞으로 저를 돌려세운 기억

그 절망의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제 사촌동생이 떠올랐습니다.

제 동생은 나이터울이 얼마 안 나는 현직 경찰입니다.

몇 년 전, 동생이 목숨을 걸고 한강에 뛰어들어
한 자살 시도자를 구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경찰서에 찾아온 그분의 가족들은 고맙다는 말 대신 동생에게 대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그냥 죽게 냅두지 왜 구했냐,
지금 몇 번째 이러는 줄 아냐, 우리도 힘들어 죽겠다…”

자기도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며 구했는데
그런 모진 말을 들은 동생은 트라우마가 생겨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벼랑 끝에서 그 동생의 아픈 모습이 문득 겹치더군요.

‘나는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
주위에 피해 주지 말고 내 힘으로
어떻게든 이겨내야지…’

마음을 가까스로 다잡고 다시 컴퓨터를 켰습니다.
고용24 사이트에 들어가 내 상황에 맞는
국비 지원 수업들을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부모에 나이도 걸리구요…
” 인력개발센터에서 펑펑 운 날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려고
집 근처 인력개발센터를 찾아갔던 날이 있었습니다.

고용24를 통해 무역업과 온라인 실무 쪽으로
이력서도 미리 넣어둔 상태였죠.

하지만 그날 저는 비참한 거절감을 맛보고
하루 종일 울어야 했습니다.

앞으로 파산이나 자활을 준비하시는 사장님들도
언젠가 마주할지 모르는 차가운 현실입니다.

나: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왔는데
교육 신청이 가능할까요?”

센터 직원:
“나이랑 그동안 하셨던 일을 보니…
죄송하지만 수업 참여가 어려우실 것 같아요.”

나:
“왜요? 수업도 마음대로 참여를 못 하나요?”

센터 직원:
“연계된 업체들이 대부분 최저시급 기준이라
사장님이 원하시는 기준(월 200만 원 선)으로는
취업 매칭이 안 됩니다.
그리고 사실… 한부모이시기도 하고,
나이도 좀 걸리시구요.
다른 분들께 기회가 먼저 갑니다.
다음 분 기다리시니 여기까지만 얘기할게요.”

20년간 디자이너 출신으로 공장까지 책임지던 제가, 나이와 한부모라는 제한에 걸려
면접조차 제대로 못 보고 문전박대를 당한 것입니다.

직원은 은근히 저에게
쿠팡 물류센터 알바나 배달 일을 권하더군요.

사실 저는 3년 전 거래처 배송을 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복강내출혈로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서서 일하는 직업을 가지려면 다리 치료부터 받아야
하고, 치료를 받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 악순환이었지만, 나라의 시스템은 제 개인의 절박한 사정을 눈여겨봐 주지 않았습니다.

인력개발센터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습니다.

그 꼴로 차마 버스나 전철을 탈 수가 없어서,
눈물에 젖은 물티슈를 꽉 짜내며
아픈 다리를 이끌고 네 정거장 거리를
혼자 펑펑 울며 걸어왔습니다.

남들에게 말도 못 할 지독한 패배감과
고독이 온몸을 짓누르던 순간이었습니다.


밤을 새우며 다시 짠 시간표,
그리고 터닝포인트

집에 오자마자 세수를 하고
얼음으로 퉁퉁 부은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다시 독기를 품었습니다.

‘그래, 누굴 탓하겠냐. 아파도 내가 이겨내야지.’

그날 밤 컴퓨터를 켜고 밤새 고용24 사이트를 뒤져
시간표를 다시 짜기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워보자는 마음에
경비가 적게 들면서도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하든
무기가 될 수 있는 교육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때 선택해서 가장 먼저 배웠던 것이 바로
[유튜브 교육 + SNS 온라인 실무 마케팅]이었습니다.

과거에 공장을 할 때는 브랜드 오더 맞추고
원단 발주하느라 바빠서

‘공장장은 공장만 잘 돌리면 되지,
인플루언서나 마케팅이 무슨 상관이냐’ 며
안일하게 생각했었습니다.

혼자 법원에 다니며 외상대금 받아낼 줄만 알았지,
세상 트렌드가 변하는 걸 몰랐던 거죠.

하지만 그때 마케팅과 브랜딩의 중요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밥 한 번 못 해준
미안함에 한식·중식·양식·베이커리 제조 기술까지
악착같이 배우려고 합니다.

주위 동종업계 선배들은

“다 배우면 나도 알려달라”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참 씁쓸하면서도

‘반드시 다시 일어서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죠.

그때 그 시절,
비 내리는 토요일 공원 의자에 앉아

‘내 인생은 새드엔딩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해피엔딩(Happy Anding)일 것’

다가오는 LH 청약 신청을 넣으며
이사 준비를 했었습니다.


2026년 현재,
그 시절을 돌아보며

당시 새벽 5시 31분에 절망을
꾹꾹 눌러 담아 썼던 그 글로부터 벌써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2026년 현재,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약속대로 저는 그 시절 배운 유튜브와
온라인 마케팅 기술을 밑거름 삼아,

수급자를 당당히 탈출하기위해,
부활하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서 흘린 피눈물과
시간표가 결국 제 인생의 가장 강력한
터닝포인트가 된 셈입니다.

당시 제가 길을 잃고 헤매던 초기에,
다른 광고성 업체들과 달리 제 복잡한 사정과
억울한 사기 피해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개인파산 면책 후 수급자 연계’라는
정확한 법적 돌파구를 찾아주신 법무사님과
담당 과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30가지 서류 지옥을 뚫고
압류방지 통장까지 만들며 무사히 버텨낼 수 있었죠.

지금 이 순간에도 회생과 파산의 기로에서
길을 못 찾고 계시거나,

나이와 현실의 벽에 막혀 눈물 흘리는
자영업자 사장님들이 정말 많으실 겁니다.
혼자 끙끙 앓으며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밑바닥에서도 솟아날 구멍은 분명히 있습니다.
절대 기죽지 마시고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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