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iambandiceo

  • [파산일지 3화] 파산에서 기초수급자로..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자활의 기록

    돌이켜보면 2025년 가을,
    파산 선고를 마치고 기초생활수급자 증명서를
    손에 쥐었던 그 시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숨이 막히던 나날이었습니다.

    당장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기에, 하루 10시간씩 내일배움카드로 학원 교육을 받으며
    정신없이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제 처참한 현실을 고백했던 글에
    수많은 동료 자영업자분들이 피눈물 나는 댓글과
    질문들을 남겨주셨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법무사 사무실은 어디냐”,
    “개인회생은 왜 안 했냐” 등등…

    오늘 3화에서는
    그 시절 제가 회생과 파산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차가운 현실 벽에 부딪혔었는지
    그 못다 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회생이냐 파산이냐,
    그리고 선배의 조언

    처음 빚 독촉이 몰아칠 때,
    저 역시 회생과 파산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습니다.
    서초동 일대의 법무사 사무실 서너 군데를 돌며
    전화와 방문 상담을 받았었죠.

    하지만 돌아오는 질문은 늘 똑같았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건가요?
    당장 소득이 없으면 회생 신청 자체가 안 됩니다.
    회생했다가 결국 터져서 파산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많으니 잘 선택하셔야 합니다.”

    그 질문에 저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70억 매출을 찍으며 20년 동안
    의류 공장을 운영하고 화려한 디자인만 해왔던
    내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대체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지
    제 자신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신용불량자로 5~10년은
    숨 죽이며 살아야 하는데,
    과연 재기라는 걸 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때 동종업계 선배 한 분이 제게
    아주 독한 조언을 건넸습니다.

    “파산하면 처음에 정말 많이 힘들어.
    한강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고
    물만 보면 뛰어내리고 싶을 거야.
    그런데 막상 겪어보면 또 해볼 만해.
    한번 파산해 보면 너무 아파서,
    그 뒤론 다신 그렇게 안 살려고 스스로를
    철저하게 옭아매거든.
    너 아직 40대 초반이잖아?
    내 기준에 파산은,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한
    결정적인 계기였어.”

    그 말을 듣는데 화도 나고 겁도 났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에 순간 진짜 한강으로 가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한강이 아닌
    컴퓨터 앞으로 저를 돌려세운 기억

    그 절망의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제 사촌동생이 떠올랐습니다.

    제 동생은 나이터울이 얼마 안 나는 현직 경찰입니다.

    몇 년 전, 동생이 목숨을 걸고 한강에 뛰어들어
    한 자살 시도자를 구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경찰서에 찾아온 그분의 가족들은 고맙다는 말 대신 동생에게 대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그냥 죽게 냅두지 왜 구했냐,
    지금 몇 번째 이러는 줄 아냐, 우리도 힘들어 죽겠다…”

    자기도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며 구했는데
    그런 모진 말을 들은 동생은 트라우마가 생겨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벼랑 끝에서 그 동생의 아픈 모습이 문득 겹치더군요.

    ‘나는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
    주위에 피해 주지 말고 내 힘으로
    어떻게든 이겨내야지…’

    마음을 가까스로 다잡고 다시 컴퓨터를 켰습니다.
    고용24 사이트에 들어가 내 상황에 맞는
    국비 지원 수업들을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부모에 나이도 걸리구요…
    ” 인력개발센터에서 펑펑 운 날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려고
    집 근처 인력개발센터를 찾아갔던 날이 있었습니다.

    고용24를 통해 무역업과 온라인 실무 쪽으로
    이력서도 미리 넣어둔 상태였죠.

    하지만 그날 저는 비참한 거절감을 맛보고
    하루 종일 울어야 했습니다.

    앞으로 파산이나 자활을 준비하시는 사장님들도
    언젠가 마주할지 모르는 차가운 현실입니다.

    나: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왔는데
    교육 신청이 가능할까요?”

    센터 직원:
    “나이랑 그동안 하셨던 일을 보니…
    죄송하지만 수업 참여가 어려우실 것 같아요.”

    나:
    “왜요? 수업도 마음대로 참여를 못 하나요?”

    센터 직원:
    “연계된 업체들이 대부분 최저시급 기준이라
    사장님이 원하시는 기준(월 200만 원 선)으로는
    취업 매칭이 안 됩니다.
    그리고 사실… 한부모이시기도 하고,
    나이도 좀 걸리시구요.
    다른 분들께 기회가 먼저 갑니다.
    다음 분 기다리시니 여기까지만 얘기할게요.”

    20년간 디자이너 출신으로 공장까지 책임지던 제가, 나이와 한부모라는 제한에 걸려
    면접조차 제대로 못 보고 문전박대를 당한 것입니다.

    직원은 은근히 저에게
    쿠팡 물류센터 알바나 배달 일을 권하더군요.

    사실 저는 3년 전 거래처 배송을 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복강내출혈로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서서 일하는 직업을 가지려면 다리 치료부터 받아야
    하고, 치료를 받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 악순환이었지만, 나라의 시스템은 제 개인의 절박한 사정을 눈여겨봐 주지 않았습니다.

    인력개발센터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습니다.

    그 꼴로 차마 버스나 전철을 탈 수가 없어서,
    눈물에 젖은 물티슈를 꽉 짜내며
    아픈 다리를 이끌고 네 정거장 거리를
    혼자 펑펑 울며 걸어왔습니다.

    남들에게 말도 못 할 지독한 패배감과
    고독이 온몸을 짓누르던 순간이었습니다.


    밤을 새우며 다시 짠 시간표,
    그리고 터닝포인트

    집에 오자마자 세수를 하고
    얼음으로 퉁퉁 부은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다시 독기를 품었습니다.

    ‘그래, 누굴 탓하겠냐. 아파도 내가 이겨내야지.’

    그날 밤 컴퓨터를 켜고 밤새 고용24 사이트를 뒤져
    시간표를 다시 짜기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워보자는 마음에
    경비가 적게 들면서도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하든
    무기가 될 수 있는 교육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때 선택해서 가장 먼저 배웠던 것이 바로
    [유튜브 교육 + SNS 온라인 실무 마케팅]이었습니다.

    과거에 공장을 할 때는 브랜드 오더 맞추고
    원단 발주하느라 바빠서

    ‘공장장은 공장만 잘 돌리면 되지,
    인플루언서나 마케팅이 무슨 상관이냐’ 며
    안일하게 생각했었습니다.

    혼자 법원에 다니며 외상대금 받아낼 줄만 알았지,
    세상 트렌드가 변하는 걸 몰랐던 거죠.

    하지만 그때 마케팅과 브랜딩의 중요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밥 한 번 못 해준
    미안함에 한식·중식·양식·베이커리 제조 기술까지
    악착같이 배우려고 합니다.

    주위 동종업계 선배들은

    “다 배우면 나도 알려달라”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참 씁쓸하면서도

    ‘반드시 다시 일어서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죠.

    그때 그 시절,
    비 내리는 토요일 공원 의자에 앉아

    ‘내 인생은 새드엔딩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해피엔딩(Happy Anding)일 것’

    다가오는 LH 청약 신청을 넣으며
    이사 준비를 했었습니다.


    2026년 현재,
    그 시절을 돌아보며

    당시 새벽 5시 31분에 절망을
    꾹꾹 눌러 담아 썼던 그 글로부터 벌써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2026년 현재,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약속대로 저는 그 시절 배운 유튜브와
    온라인 마케팅 기술을 밑거름 삼아,

    수급자를 당당히 탈출하기위해,
    부활하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서 흘린 피눈물과
    시간표가 결국 제 인생의 가장 강력한
    터닝포인트가 된 셈입니다.

    당시 제가 길을 잃고 헤매던 초기에,
    다른 광고성 업체들과 달리 제 복잡한 사정과
    억울한 사기 피해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개인파산 면책 후 수급자 연계’라는
    정확한 법적 돌파구를 찾아주신 법무사님과
    담당 과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30가지 서류 지옥을 뚫고
    압류방지 통장까지 만들며 무사히 버텨낼 수 있었죠.

    지금 이 순간에도 회생과 파산의 기로에서
    길을 못 찾고 계시거나,

    나이와 현실의 벽에 막혀 눈물 흘리는
    자영업자 사장님들이 정말 많으실 겁니다.
    혼자 끙끙 앓으며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밑바닥에서도 솟아날 구멍은 분명히 있습니다.
    절대 기죽지 마시고 화이팅입니다!


  • [파산일지 2화] 파산선고가 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습니다


    지난 파산일지 1화에서는 법원 문을 나서며
    눈물 흘리던 기억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날 이후 제 인생에는
    또 한 번의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나라에서 지정한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것입니다.

    당시 법원에서 돌아와 마주한 카페의
    수많은 응원 댓글들을 읽으며
    참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무거움 속에서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겨우 붙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나를 숨 막히게 했던 30가지 법원 제출 서류들

    많은 분들이 도대체 파산 신청을 할 때
    어떤 서류들이 필요하냐고 물어보십니다.

    법원과 법무사무소에서 저에게 요구했던 서류는
    자그마치 30가지가 넘었습니다.

    구청, 주민센터, 보건소, 은행,
    그리고 제가 지난 2~3년 동안 거래했던
    모든 은행의 통장 내역서까지…

    내 모든 삶의 흔적과 실패의 기록을
    샅샅이 파헤쳐서 법원에 제출해야 했기에,
    이 서류들을 하나하나 발급받으러 돌아다닐 때의
    비참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서류들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법무사무소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 현재 소득과 재산 상태를 조회해 보더니,
    제가 ‘기초생활수급자’ 조건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더군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나름 70억 매출을 내던 패션 디자이너였고
    자영업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내가..

    나라의 보조를 받아야 하는 수급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지독했던 자영업의 굴레를 벗어나 마주한 현실은,
    내 이름 뒤에 ‘기초수급자’라는
    다섯 글자가 붙는 것이었습니다.


    조양방직 카페에서
    마주한 나의 약점

    씁쓸한 마음을 달래러 찾아갔던
    조양방직 카페 내에는 마치
    ‘응답하라 1988’처럼 역사가 담긴
    오래된 제품들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가만히 둘러보는데,
    3대 정도로 보이는 가족들이 하하호호 웃으시며
    과거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더군요.

    “참 가난했었다…”

    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이 지나가면서 들려오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문득 제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방학 때마다 부모님이 너무 바쁘셔서
    저 혼자 항상 시골 할머니댁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시골 방안에 걸려있던 흑백 가족사진들…

    “오늘날 카페에서 비슷한
    흑백 사진들을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며 펑펑 났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가장 큰 약점은
    ‘가족’인가 봅니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으로서,
    내 아이들에게 이 가난의 무게를 지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울컥 올라와 눈물을 참느라
    참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많이 물어보시는
    파산 관련 Q&A

    당시 카페 사장님들이 가장 많이 질문해 주셨고,
    지금도 파산을 고민하는 많은 자영업자분들이
    궁금해하시는 현실적인 의문들에 대해
    제가 아는 선에서 답을 정리해 드립니다.

    Q1. 파산 신청하면 카드는 어떻게 사용하며 지내나요?

    저는 파산으로 인해 ‘긴급생계 대상자’가 되어
    두 달 동안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법적 서류들을
    토대로 위기 상황이 인정되었고,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이라
    주민센터 복지과에서
    [압류방지 통장]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이 통장과 연결된 카드는 계좌이체도 안 되고,
    오직 정부지원금 현금인출만 되게
    해놓은 카드였습니다.

    이것으로 두 달 동안
    생계를 이어 나갔습니다.

    Q2. 앞으로의 생계 계획과 자활은 어떻게 되나요?

    ‘생계수당’이라고 해서, 직업 훈련을 받는 동안
    나라에서 수당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냥 주는 것은 아니고 관내와 이어진 사업체
    (카페 근무, 편의점, 공방 제작,
    플라스틱 사출, 청소 등)
    에서 일을 해야 하며 업종과 근무시간에 따라

    약 50~150만 원 사이의 급여를 받게 됩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배정받아
    하게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우선은 훈련을 받으면서,
    그동안 마음의 병이 되었던 우울증과 공황장애
    치료부터 병행하게 될 것 같습니다.

    Q3. 파산하면 기존의 빚은 어떻게 처리되나요?

    제 명의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이는 공매로 처분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를 매도함으로써 나오는 금액으로
    국세를 제외한 나머지 일반 빚들은
    어느 정도 탕감이 됩니다.
    (대출 규제 때문에 2년 동안 안 팔리던
    아파트가 결국 이렇게 처분되더군요.)

    단, 국세는 평생 갚아야 합니다.

    앞으로 일을 해서 월급을 받으면 기본 생계비를
    제외한 금액은 전부 못 냈던 국세로 빠져나갑니다.

    심지어 예전에 외상대금 안 주고
    도망간 쓰레기 같은 놈을 잡아서
    돈을 돌려받는다고 해도,

    그 돈 역시 전부 국세로 최우선 변제됩니다.

    빚이 탕감된다고 해서 모든 책임이
    완전히 제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 10개월이 지난 지금,
    자활을 준비하며

    당시 글을 마칠 때 저는 새벽에 이렇게 적었더군요.
    “다음에 글을 쓰게 된다면..
    어쩌면 자활 과정의 글들이 되겠네요.”

    이 글을 쓰고 10개월이 흐른 지금,
    저는 그 약속대로
    진짜 ‘자활과 부활’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습니다.

    파산과 기초수급자라는 타이틀이 처음엔 낙인처럼
    아팠지만, 오히려 저를 죈 지독한 사슬을
    끊어주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인생의 아침 글을 읽으시며
    힘든 하루를 버텨내고 계실 수많은 사장님들.

    밑바닥에서도 길은 있습니다.
    오늘도 힘내시고,
    다 같이 기운 내서 화이팅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파산일지 1화] 파산선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날의 기록


    지금으로부터 약 10개월 전인
    2025년 9월 9일.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스마트폰을 켜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꾹꾹 눌러썼던 글입니다.

    당시의 비참함과 절망,
    그리고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그때의 기록을 날것 그대로 꺼내어 봅니다.

    당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인생 뭐 같다’ 라는 생각과..
    ‘나는 그래도 나름 청년이더라..’

    하는 서글픈 생각이 교차했지요.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무거움과,

    법정에서 나눠준 서류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법정에서 마주한
    100여 명의 무거운 사연들

    그날 법정에서는 총 100분 정도 되는 분들이
    순차적으로 호명되었습니다.

    제 차례가 불러지며 서류를 받는데,
    평상시라면 나의 이름이 적힌 서류를 받을 땐
    별 생각이 없다가 법정안에서 받는 서류는
    뭔가 마음의 묵직함을 주더군요.

    법정에 나오신 변호사님은 상황에 따라
    파산선고를 받는 분들의 질의응답에 때론 매몰차게,
    때론 따스하게 답해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질의응답 분위기상..
    저는 그곳에서 최연소였던지라;;
    변호사님도 제 얼굴을 보며 놀라시고,
    “잘 해결되기 바란다”며
    따뜻한 말을 건네주셨습니다.

    전반적으로 50대 후반~60대 분들이 30% 정도였고, 제 기준에는 어머니 아버지 되는 분들의 연세가 특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분들도 각자의 사연을 갖고 여기까지 나오셨을 텐데, 얼굴은 상하셨고 몸도 많이 쇠약해 보이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투명 핸드폰 케이스 속,
    아이들의 증명사진

    사실 제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각자 불안한 마음에
    뭐라도 잡고 계셨는데, 그게 거의 핸드폰이었습니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어르신들의 핸드폰 투명 케이스 안쪽에는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자녀들의 증명사진이 빛바랜 채 꽂혀 있었습니다.

    또한 핸드폰 배경화면 가득 채운 반려견,
    반려묘 그리고 가족들의 사진들..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결국 법정에서 나오는 순간 저 혼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 저도 저지만,
    다른 분들도 서로의 얼굴과 모습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다만 다른 분들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울지는 않으시더라고요.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저와 같은 사연을 가지신
    자영업자이셨습니다.

    그 무거운 법원을 나오는데..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쪽의 법정에선 경매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줄을 서 계셨고, 바깥에선
    전세 사기 관련 피해자분들이 울먹이며 기다리시고..


    또 다른 법정에선 사기, 강도, 폭력, 횡령 등의 피의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법원이라는 공간 전체가
    거대한 슬픔의 소용돌이 같았습니다.


    자영업이라는 지독한 굴레,
    그리고 망가진 몸

    돌이켜보면
    지난 2~3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범죄자 잡아보겠다고 법원도 여러 번 다녀오고,
    보이스피싱을 당해 경찰서도 여러 번
    들락날락했습니다.

    상대방의 인성에 대해 바닥이란 바닥은 다 겪어보았고, 사기 쳐놓고 유튜브로 당당하게
    강의 팔이 하는 쓰레기 같은 놈들도 많이 겪었습니다.

    자영업은 참 회사원일 때보다도 바쁘고, 민감하고,
    특이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잔인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 시절 극도의 스트레스로 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시력도 많이 떨어졌지요.

    안경점에서도 신경 이상이 생긴 것 같다며 안과며
    신경과며 다 가보라고 권할 정도였으니..
    참 암담했습니다.


    💡 10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다짐을 읽으며

    당시 글의 마지막에 저는 이렇게 적어두었습니다.

    “IMF 때보다도 안 좋은 경기라고 하시면서도
    법률사무소에는 밀린 서류들이 참 많더라구요.
    모순이라고 해야 하나?

    신용이 돌아오는 데는 10년 정도가 걸릴 거라고 하시고. 하지만 다시 0부터 잘 만들어가야겠죠.”

    이 글을 쓰고 10개월이 흐른 2026년 지금,
    저는 약속대로 다시 0부터 차근차근
    제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카페에서 저에게 응원 댓글을 주셨던
    수많은 사장님들의 온기를 잊지 못합니다.

    그때의 다짐을 잃지 않고,
    이 풀숲에서 다시 한번 힘차게 나아가보려 합니다.
    다 같이 다시 화이팅입니다!


  • 70억 매출 패션 디자이너의 개인파산 생존기: 인생의 바닥에서 다시 0부터

    ============================

    안녕하세요. 반딧불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인생의 작은 아지트이자,

    다시 일어서기 위한 기록을 담는

    ‘반딧불이 풀숲’입니다.

    ============================

    70억 매출을 찍고 파산선고를 받기까지,
    세상 어디에도 차마 꺼내놓지 못했던 비밀들을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나무숲에 외치듯 털어놓는 공간입니다.

    이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약 10개월 전인
    2025년 9월 9일 아침,
    제 인생의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법원으로
    파산선고를 받러 가던 날, 자영업자를 위한 카페인
    “아프니까 사장이다 카페”에
    심경을 털어놓았던 제 첫 독백에서 시작됩니다.

    그날의 철저한 절망과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2026년 7월의 오늘,
    제 풀숲에 글을 다시 깊게 박아둡니다.


    한우물 20년, 70억 매출 뒤에
    찾아온 잔인한 현실

    당시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저는 정말 법원으로
    파산선고를 받으러 가던 길 위에 있었습니다.
    의류업이라는 한우물만 판 지 거의 20년이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기 속에서도 악착같이
    잘 견뎠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모두가 기대했던 경기는 오히려 침체 상태로 깊게 빠져들었습니다.

    돌아온 것은 수많은 거래처의 연쇄 부도와 야반도주, 보이스피싱과 사기…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잔인한 현실뿐이었습니다.

    저는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고 납품했기에,
    원가만 해도 장당 10만 원이 넘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무너진 시장에서
    결국 논란의 소금빵보다도 저렴한 금액에
    눈물을 머금고 땡처리를 해야 했고,
    일부는 기부로 처분해야 했습니다.

    대신 떠안은 막대한 부채로 인해 세금도 제때 내지 못하게 되었고, 지독한 돌려막기에 한계가 오더니
    저 역시도


    ‘아.. 이제 나를 정말 멈춰야 되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더군요.
    주위에서는 회생을 하는 게 낫지 않냐고 권유했지만, 밀린 국세와 사업 경비로 쓰인 카드값의 무게로 인해 저는 결국 ‘파산’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약 3개월에 걸쳐 파산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정말 많이도 울었습니다.

    내 자신을 때려가며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야 살아야 한다”며

    밤마다 울부짖었습니다.
    주위에서는 같이 교회를 다니자, 절을 다니자고
    종교를 권했지만, 저는 그 어떤 종교적 도움 없이 오롯이 제 두 발로 버텨내며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결국 제 분신 같았던 자동차는 공매로 넘어갔고,
    평생의 일궈온 아파트 역시 국세 체납으로 압류되어
    경매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폐업하면서 모든 걸 내려놓기로 결심했지만,
    파산 과정이 결코 짧지 않다 보니 참 생각이 많아지는 나날이었습니다.

    ‘내가 과연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이젠 내 명의의 집이 아닌 이 좁은 집에서 내가 잘 케어할 수 있을까?’

    당시에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답이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폐업 후 10개월,
    바닥에서 배운 자영업의
    피눈물 나는 교훈

    그 지독했던 파산선고 이후 지난 10개월 동안,
    저는 참 바쁘게 버텨왔습니다.
    폐업 신고 후 제일 먼저 내일배움카드를 만들었습니다.

    ‘훈련’이라는 이름 하에 예전엔 관심도 없던
    유튜브 교육과 마케팅 교육을 들었습니다.

    전에 사업을 했을 땐 마케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알아서 다들 저를 찾아와주셨는데,
    이제는 다시 0부터 시작하는 법을 철저하게 배우고 있습니다.

    한 번도 쉬지 못하고 달렸으니 1년 정도는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는 쉼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주위의 조언에 따라,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20년 가까이 개인사업자로서 최고세율로
    세금까지 내보고, 결국 바닥까지 무너지며 뼈저리게
    느낀 점은 딱 이 몇 가지였습니다.


    💡70억 매출을 찍고 무너지며 배운 자영업 교훈 8가지

    1. 돈이 있는 곳엔 언제나 사기꾼이 꼬인다.
    2. 세무사도, 직원도 절대 믿지 말라.
      누락된 세금 자료가 있는지 직접 확인할 것.
    3. 사장 부재는 금물이다.
      사무실 자리를 절대 비우지 말 것.
    4. 재고 관리에 충실하라.
      직원에게만 절대 전적으로 맡기지 말 것.
    5. 사업이 잘돼도 남에게 말하지 말고,
      안돼도 말하지 말라. 입을 무겁게 해야 한다.
    6. 친분이 어떠하든, 동업은 절대 하지 말라.
      개인사업자로든 무엇으로든 동업은
      파멸의 지름길이다.
    7. 매출이 일정 수준 이상 올랐을 땐
      반드시 법인사업자로 전환해서 리스크를
      분산해라.
    8. 마케팅비를 줄이고 싶고 글을 잘 쓴다면,
      스레드(Threads)나 블로그 등 SNS를 통한
      무료 홍보를 필사적으로 노릴 것.

    인생의 바닥에서 다시 페달을 밟다

    개인사업자로서 정상의 자리까지 가봤지만,
    거래처의 배신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니 나름 건강했던 정신마저 완전히 혼미해지더군요.

    공황장애는 더욱 거세게 밀려왔고,
    장염에 식도염까지 겹쳐 무언갈 먹으면 다 토해내느라 원치 않는 억지 다이어트를 하며 제 의지와 상관없이 몸도 완전히 망가졌었습니다.

    마인드 컨트롤, 릴렉스…

    이런 부드러운 단어들은
    ‘다 개나 줘버려라’라고 할 정도로 제 몸과 마음은 심각한 만신창이 상태였습니다.

    그 지독한 고통의 시절 속에서 저를 구원해 준 것은
    오직 ‘자전거’ 하나였습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목을 조여올 때마다,
    밤마다 자전거를 타며 여러 도시의 한적한 길을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뛰는 체력은 도저히 안 돼서 선택한 자전거가,
    지난 잔인한 시간들을 버텨내는 데 정말 위대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회생이나 파산을 준비하며
    사기꾼 브로커들에게 속고 계시는 사장님들이 있다면,

    반드시 ‘법원 근처에 진짜 오프라인 사무실이 있는 곳’에서 진행하시라는 당부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브로커들에게 당하면 벼랑 끝에서
    한 번 더 추락하게 됩니다.

    바닥을 찍어야만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저는 지난 10개월을 잘 견디고 이겨내 왔습니다.

    2026년 현재, 저는 인생의 최저점에서
    다시 0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모든 사장님들, 부디 버텨내시고 힘내세요.